|
| (새둥지마을) 우리가족에게 가고싶은 고향이 생겼답니다 |
|
| 글쓴이 : 윤동훈 |
날짜 : 10.10.25 |
조회 : 1631 |
|
|
“아빠, 여름방학 때 약속 지켜주세요!‘
“그래 이번에는 꼭 지킬게”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18년간 병간호를 해온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이어가시던 할머니가 8월 초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이 소원하던 집밖에서의 1박을 뒤로 물려야 했습니다. 단 하룻밤도 가족이 여행을 가서 집밖에서 보낸 적이 없을 만큼 오래도록 병간호에 매달려왔기에 아이들의 실망도 컸지만 아내과 저는 어머니를 떠나 보낸 상실감과 우울증이 말할 수 없기 컸기에 여행은 2학기가 절반이 넘어가도록 말그대로 空約이 되고 있었습니다.
일이 될려고 그랬는지 우연히 대산농촌문화재단에서 하는 농촌체험이 눈에 띄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당첨이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남들 다 맞는다는 5000원짜리 복권 당첨금도 한번도 되어보지 못했던 제게 생전 겪어보지 못한 행복감과 아빠로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을 동시에 준 소식이었습니다.
당일 아침에 아이들이 보는 영어시험과 청첩장을 받은 곳이 두 군데나 걸려 있었지만 청첩은 미리 축의금을 보내며 양해를 구하고 영어시험은 새둥지 마을 사무장님께 미리 전화로 드려 토요일 11시에 겨우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가는 길은 가족 모두 기대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창문을 내리고 노래를 불렀고 혹시나 체험에 늦을까 걱정되어 아내는 차안에서 빵과 우유로 아이들의 요기를 채워주었습니다. 가는 동안의 마음졸임도 잠시, 도착한 시간은 1시가 좀 넘어 있었지만 다행히 식사 끝무렵에 도착해서 얼른 식사를 마치고 나니 사무장님께서 두 번 걸음을 마다 않으시고 승마체험장으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덜컹덜컹 트랙터 뒤에 좌석을 이어 탈 것은 아이들에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승마체험장의 작은 포니와 큰 검정말은 한눈에도 순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포니도 타고 큰 말도 타는데 여지없이 아빠 몫은 마부더군요. 아내는 제게 “아이들이 썰매를 타면 루돌프요, 말을 타면 마부”라고 농담을 건네며 웃었습니다.
말타기 체험이 끝나고 메기 잡이 체험이 이어졌습니다. 다리 아래에 바닥을 고르고 도랑을 막아 놓았기 때문에 아주 어린아이들도 걱정없이 메기잡이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미끌미끌 손에서 잘도 도망다니는 메기를 잡으려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못 잡던 큰 아이도 나중에는 메기 잡기 선수가 되어 두 녀석이 합동작전을 펴며 메기를 잡았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게 잡았던지 발목 조금 더 차는 물인데 옷은 허리까지 젖었더군요. 아이들이 하도 신나서 잡기에 어른들이 슬그머니 양동이에 잡은 메기를 풀어주어가며 체험 시간을 늘려주었습니다.
“아빠, 나 13마리 잡았다” 작은 아이가 의기양양해서 저를 보고 소리질렀습니다.
“근데요, 저 양동이에 메기가 몇 마리나 들어가요?”
꽤 많이 잡은 것 같은데 여전히 물속을 헤엄치는 메기들을 보고 큰 아이가 갸웃거리면서 물었습니다.
“응, 한 50마리 들어가지”
능청스러운 촌장님의 대답에 어른들은 모두 한바탕 웃었고 아이는 그중에 열 한 마리는 자기가 잡은 거라면서 뿌듯해 했습니다. 이날 잡은 메기는 저녁 식사후 밤참으로 나온 메기 매운탕 수제비로 먹을 거라 하셨습니다.
세 번째 체험은 벼수확이었습니다 새둥지 마을은 본디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벼를 재배하는 곳이라 촌장님께서는 마을에서 재배되는 쌀에 대해 자부심을 가득 갖고 계셨습니다. 맨처음 모판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농사짓는 각종 기계와 수확 후 벼를 말리는 과정, 도정하는 기계도 보여주셨습니다. 정미소안에는 수확한 벼를 담은 톤백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잠깐 다녀가는 저희도 그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 직접 수확하신 분들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클까요. 농사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미소를 먼저 보고 나서 논으로 이동해 벼를 직접 수확해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홀태 사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먼저 듣고 나서 나눠주신 목장갑과 미리 끝을 부러뜨려 테이프로 감아 다치지 않게 해놓은 낫을 받아 쥐고 아이들이 논으로 직접 들어가 벼를 베어가지고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홀태 밑에 나무 판자에 발을 올려놓고 낑낑거리면서 당겨보고 나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생각보다 힘이 들었던 거지요.
인심좋은 촌장님께서 벼를 두어줌 베어다가 집에가서 꽃병 같은데 꽂아놓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들이 두고두고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깨끗하고 실한 벼 두어줌을 베어 아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두부 만들기 체험이 또 있었습니다. 체험이 어찌나 많은지 준비해주는 대로 체험하고 밥만 먹는 저희도 일정이 바쁘게 느껴졌는데 이리 저리 데려다 주시는 젊은 사무장님이나 부녀회 분들, 촌장님은 얼마나 수고로우셨을까 싶더군요.
지역 특산품인 콩의 종류, 두부 만드는 과정, 간수와 소포제로 쓰이는 들기름에 대한 설명을 눈을 빛내면서 듣던 아이들은 번갈아 맷돌을 돌려보고 물기를 짜내는 걸 거들고, 가마솥에서 콩물을 끓이고 간수넣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만들어진 두부를 먹는 저녁식사 시간은 얼마나 또 꿀맛이던지요. 직접 만든 두부라서 아이들이 더 잘먹는 것은 기본이고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라는 점이 부모된 저희에게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소망등을 만들어 날렸습니다. 소망등이 생각보다 커서 70~80Cm높이는 충분히 되어 가족들이 쓰고 싶은 말을 신나게 썼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말 좀 잘 듣기(?)를 바란다고 썼더니 아이들의 반격이 이어졌습니다. 아빠 담배 끊으세요. 아빠, TV말고 인터넷말고 핸드폰 말고 우리랑 놀아주세요 등등.. 전, 본전도 못 찾았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군요. 아내는 하늘에 계신 할머니가 부디 행복하시길 빈다고 쓰는 걸 보고 마음이 울컥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그동안 할머니를 위해 미뤄왔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제가 꼭 챙겨서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망등 아래에 파라핀을 매달고 점화기를 써서 날렸습니다. 소망등과 함께 떠오르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 우리가족의 바람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습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늘에 구름이 없어 은하수를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초등학교 때 속리산에 캠프 가서 단 한 번 은하수를 본 기억을 평생동안 마음속에 보물처럼 담아놓았습니다.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도시의 하늘에는 별을 몇 개 찾아보기도 힘이 들었지요.
낮에 잡은 메기로 참을 먹었습니다. 수제비가 얼마나 맛있던지 매운 걸 잘 못 먹는 큰 아이는 메기는 저를 주고 수제비는 골라 먹으며 네 그릇을 먹더군요. 막걸리와 단감까지 고루고루 마음써 주셔서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운 밤참이었습니다. 막걸리는 큰 병이라 아내와 다른 가족들과 한 잔씩 권해가면서 먹다보니 어느 새 술기운이 올랐습니다. 저녁바람은 쌀쌀했지만 밤참과 함께 나온 막걸리 덕에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산속이라 밤이 빨랐지만, 마당에는 큰 등이 있고 서늘한 기온에 모기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옆에서 피구를 했습니다. 밤이면 숨을 죽이고 발끝으로 걸어야 하는 아파트 촌의 아이들이 모처럼 마음놓고 기를 펴면서 노는 모습이 짠했습니다.
너른 마당에는 항상 굴렁쇠와 팽이, 윷놀이판과 윷, 투호, 제기와 바퀴달린 썰매가 있어서 아이들은 체험 짬짬이 정말 실컷 놀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우리 둘째 민우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여지껏 노는 건 무조건 다 좋은 줄 알았는데 여기서 놀아보니까 노는 것도 많이 놀면 힘들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그래서 자기가 파김치가 아니라 파죽이 되었다구요. 파죽이란 표현에 웃음보가 빵 터졌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그러나 여기 새둥지 마을은 달랐습니다. 집 떠나 호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행 떠나면 일단 숙소가 좋고 밥이 맛있고 체험할 거리 다양하고 즐거우면 되는 것인데 그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곳이었습니다. 숙소가 깨끗하고 편리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시골이라 흔히 비어있던 방에서 보는 거미줄도 퀘퀘한 냄새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이불과 베게도 깨끗해서 여행지의 찝찝함 없이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서 난방, 냉방, 환풍시설은 물론 이중으로 된 창과 샤워부스를 갖춘 욕실, TV, 옷걸이, 슬리퍼까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따끈한 방에서 금세 단잠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날의 아침 식사 후, 인절미를 만들었습니다. 인절미는 인조때 임씨성을 가진 사람이 쌀을 절구로 빻아 만들어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는 재미난 설명을 듣고 떡판위에 찐 찹쌀을 자루에 담고 아빠들이 떡메로 쳐서 떡을 어느 정도 만든 후 엄마들과 아이들도 떡메를 들었습니다. “쿵 떡 쿵 떡” 큰 아이가 옆에 있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쿵따리 떡다리” 하더군요. 뚝뚝 자른 떡에 콩고물을 묻혀 인절미를 푸짐하게 나눠 먹었습니다.
식사때마다 밥이 어찌나 맛있는지 아내는 부녀회장님께 깻잎은 어떻게 만드신 건지, 매운탕은 어떻게 하신 건지 물어보기 바빴고 남이 차려준 밥을 먹는 게 이렇게 좋은 건줄 몰랐다며 좋아했습니다. 하긴 언제 그래봤을까요. 남자 셋 속에서 아내가 속으로만 힘들어했음을 짐작조차 못했던 제가 무심했던 거지요.
마지막으로 체험전용 트랙터를 타고 15분 정도 가니 고려왕조의 종묘라는 숭의전이 나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조선의 종묘와는 달리 쓸쓸한 정취가 가득했습니다. 고려의 네 왕 뿐 아니라 16명의 충신의 위패도 모셔져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 칠원 윤씨의 시조인 윤관 장군이셨습니다. 제가 칠원 윤씨인데 시조인 윤관 장군의 위패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처음 알았습니다.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흘러 1박 2일의 일정은 금세 지나가 버렸습니다. 온갖 체험과 풍성한 추억도 부족하다 생각하셨는지 촌장님은 가족마다 무농약 현미 한 자루씩을 예쁜 광목 자루에 담아주셨습니다.저희도 된장과 고추장을 사왔지요. 정말 이런 게 시골이고 고향이구나, 친가와 외가모두 서울인지라 농촌에 연고가 없는 저희 가족은 고향의 느낌이 무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내년 여름, 저희 가족은 아이들을 데리고 새둥지 마을을 꼭 다시 찾아올 생각입니다. 다시 와서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도 보여주고 마을 회관 앞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삼겹살도 구워먹고 싶네요. 잠깐 사이에 정든 부녀회장님과 촌장님, 사무장님도 그때는 구면이니 더욱 반가와 해주시겠지요?
|
|
|
|
|
| 새둥지마을 고추장이 부천장터에 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년봄에 아파트 장터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
|
|
